팬데믹의 희망: 트랜스 젠더 여성의 여정

“진정한 나로 살기 시작한 후 내 영혼은 더 차분해지고 평화로워졌다.”
Fasha Jaafar
Country:
Malaysia

I.

직장생활 2년차, 사무실 건물에 처음 발을 들여놓던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당시 나는 매우 복잡한 심정이었지만 내면의 깊은 갈등을 끝내기 위해 큰 변화를 감당하기로 결심했다. ‘진정한 나’로서 살기 위한 내 안의 싸움이었다.

수년간 트랜스젠더 여성으로서의 내 삶은 전쟁이었다. 내 영혼은 내게 주어진 외재적 조건들과 양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외재적 조건이란,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발급해주는 신분증, 가정환경, 학교에서의 규칙과 규정, 그리고 마치 이 세상에 시스젠더(생물학적 성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말고는 다른 사람이 없는 것처럼 삶의 이진법만을 강요하는 많은 것들이 포함된다. 다른 성 정체성을 가지고 태어난 성소수자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많은 트랜스젠더 여성들은 실제로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알아채지만, 우리가 맞닥뜨리는 외부 환경은 종종 우리에게 이와는 반대로  말해준다.

어느 날 나는 생각했다. “누가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걸까? 누가 내 삶을 평화롭고 편안하게 만드는가? 이 삶을 사는 사람은 누구일까? 나인가 저들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며 나는 진정한 나 자신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모든 트랜스젠더 여성들은 자신만의  ‘커밍아웃’ 스토리가 있다. 청소년기부터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또는 황혼기에 접어들었을 때 겪는 사람도 있다. 커밍아웃의 시기는 그들의 삶에서 그 시기 마주치게 되는 환경과 여러 요건들, 제약 조건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나의 경우 5살 때부터 나의 성 정체성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야 비로소 감당할 용기가 생겼다. 

커밍아웃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 지난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 진정한 내 자신을 인정하고 스스로 조화를 이루려면 넘어야 할 우여곡절이 많다.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기 전에 항상 지속되었던  우울증, 스트레스, 불안감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내 안의 평화를 찾는 과정에서 수없이 울어야 했다.

하지만 점차 내면의 힘이 느껴졌고, 진정한 나로 살기 시작한 후  내 영혼은 더 차분해지고 평화로워졌다. 여성스러우면서도 격식 있는 차림으로 출근을 하고, 어깨에 닿을 정도로 머리를 길렀다. 내가 원하는 것을 완전히 이루지는 못했지만, 내 자신을 인정하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고 충분히 편안했다. 꿈이 이루어진 것만 같았다. 과거에 나를 감싸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II.

나는 평상시처럼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동료들은 나의 성전환 사실에 대해 제각각 반응했다. 어떤 사람들은 편안하게 받아들였고, 또 어떤 이들은 덜 친절했지만, 그들이 내 뒤에서 정말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신만이 알 것이다. 겉으로는 프로답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르나 속으로는 여전히 나 같은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결국 내 짐작이 사실로 드러났다.

상상했던 먹구름이 드디어 찾아왔다. 어느 날 나는 매니저가 누군가로부터 연락 받는 것을 들었다. 그들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내 이름이 불렸다. 매니저가 나와 대화를 시작하는 것을 어려워 한다는 점을 눈치챘지만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회사 정책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내게 이야기를 꺼낼 수 밖에 없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내가 두려워했던 일이 아니길 기도하고 기도했다. 결국 매니저는 일부 직원들의 민원 제기가 있었고, 인사과에서 사내 남자직원에 부합하는 기준으로 머리를 자르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나는 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불응하면 징계가 있을 것이라 했다. 그말을 듣고 얼마나 슬펐는지 아무도 모른다. 정성들여 길러온 머리카락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그때는 노동자, 시민으로서의 권리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마지못해 지시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금요일이었고, 나는 주말에 무엇을 해야 할지 이틀간 고민할 수 있었다. 나는 다른 커뮤니티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알아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보이시한’ 헤어스타일에 맞추기 위해 머리를 자를 필요가 있다고 했고, 차별을 견디지 못해 기꺼이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혼잣말을 했다. 규칙에 따라 머리를 짧게 유지하도록 강요당한 건 지난 24년으로 충분해. 다시는 안 돼, 이번엔 안 돼. 다시는 그 우울의 계곡에 뛰어들지 않을 거야!

엇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던 중, 나는 몇몇 친구들이 짧은 가발을 쓰고 일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이것이 내 직장생활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억누르지 않아도 되므로 나는 기꺼이 가발을 쓰고 일할 생각이다.

5년 동안 이런 일이 계속됐다고 상상해 보라. 매일 아침 준비를 하고, 하루 8~10시간 동안 이 모습을 유지하고, 일주일 중 5일을 그렇게 해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누군가에게 직장에서 직면하는 스트레스는 단순히 업무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로서 우리가 겪는 스트레스와 불편함은 직장에서 우리 자신이 될 수 없다는 점, 특정 정책에 따라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많은 다른 요소들로 인해 배가 된다.

"누가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걸까? 누가 내 삶을 평화롭고 편안하게 만드는가? 이 삶을 사는 사람은 누구일까? 나인가 저들인가?”

III.

하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옹호 활동에 참여하면서 나는 우리의 권리에 대한 깊은 인식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옹호 활동에 있어서 항상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젠더에 대한 인식이다. 소수자의 생명권을 보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모든 시민이 자유롭게 일하고, 교육을 받고,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나는 특히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안에서 모든 회사가 도입해야 할 다양성 정책의 필요성과 함께 우리의 권리에 대해 끝없이 주창하고 있다.

내게 일어난 일이 다른 트랜스젠더 여성들에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트랜스젠더들이 그런  복잡한 상황에 더 이상 직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다양성 정책은 우리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차별을 감당하지 않고,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노동자로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도전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나는 계속해서 지식을 쌓고 시민이자 노동자로서의 내 권리를 알아가고 있다. 내 자신을 더 잘 보호하고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많은 세미나와 옹호 활동에 참석했다.

오늘날 많은 대기업들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조직 운영 과정에 구현하여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SDGs가 강조하는 사명 중 하나가 바로 성평등이다. 실제로 유엔은 우리의 권리 보호를 주목하며 트랜스젠더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

 

IV.

2020년에는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대유행의 영향을 받았다.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 일어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의 일부 구성원들은 회사가 팬데믹으로 인해 이윤을 내지 못하고 운영할 수 없게 되어 일자리를 잃었다. 서비스 종료로 생계를 유지할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정부가 코로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이동통제명령(MCO)을 실행하면서 근무일수가 줄어들어 급여가 삭감된 곳도 있었다.

일부 기업들은 사업장이나 지점을 폐쇄하고 막대한 손실을 입을 정도로 영향을 받았다. 일을 할 수 없게 되거나 안정적인 거처가 없는 사람들은 힘든 시간을 견뎌내고 있다. 배급은 특정 지역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식량이나 기본적인 필수품을 구하기가 어렵다.

이 모든 어려움을 버텨내면서, 그리고 끊임없이 코로나에 감염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함께 나는 한편으로는 몇 가지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음을 느낀다. 재택근무를 할 때는 사무실에서 가발을 쓰고 일하며 불안해 했던 것과 같은 복잡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 직면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런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되어 오히려 일에 전념할 수 있고 생산성이 높아지기까지 했다.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고, 회사의 업무 방식과 일정도 점차 유연하게 조정되어 재택근무를 할 때도 있고 사무실에 출근을 하는 때도 있다. 이러한 변화로 나는 직장에서 보다 진정한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회사 경영진과 근로자 간의 소통은 이전보다 개방적으로 변화했고, 내 자신과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지키기 위해 기여한 내 노력은, 트랜스젠더 여성 커뮤니티와 구성원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확신한다. 동료들의 정신적 지원 역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노력이 어우러졌을 때, 나와 같은 트랜스젠더들이 더 이상 차별 받지 않고 일할 수 있으며 우리의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 2021년 7월
그런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되어 오히려 일에 전념할 수 있고 생산성이 높아지기까지 했다.

이 이야기는 Innovation for Change – East Asia의 요청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이는 ‘소외된 사람들의 COVID-19 이야기(COVID-19 Stories from the Margins)’라는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Innovation for Change – East Asia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및 베트남의 소외된 커뮤니티의 6명에게 코로나 팬데믹에서 얻은 교훈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기술을 제공했습니다.

‘Pandemic’s Silver Lining’ English version
Pandemic’s Silver Lining: A trans woman’s journey

‘Pandemic’s Silver Lining’ Chinese (Simplified) version
疫情之中的光芒: 跨性别女士的心路历程

‘Pandemic’s Silver Lining’ Malay version
Pandemik Membawa Sinar: Perjalanan seorang trans wanita

Resources

Collaborators

이 이야기는 원래 말레이어로 쓰여졌습니다.

글쓴이 (말레이시아어): 파샤 자아파르(Fasha Jaafar)

옮긴이 (영어): Ooi Kok Hin

옮긴이 (한국어): 윤지영(Yun Ji Young)

파샤 자아파르(Fasha Jaafar)는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서 데이터 분석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지역 시민 사회에서 활동하며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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